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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득

수통골에서 길을 잃다

수통골에는 새가 있고, 진달래꽃이 있고, 안개가 있고 물소리가 있고 가을이 아직 숨쉬고 봄이 웃고 있고 여름이 미리 오고 있고~~

대둔산에가기로 서로 시간을 맞추고 남편이 휴가를 냈고 나도 일정을 조절했다. 대둔산을 수통골로 바꾸고. 아침부터 도시락 싸고 등산 갈 기분에 들떴다. 그런데 얼마전까지 있던 등산복 바지가 없다고 투덜대는 남편,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나가고도 주저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스틱 가져오라고. 난 들릭락만한 소리로 가기 싫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차 안에서는 둘은 말없이 갔고 수통골 주차장부터는 날은 흐린데 마음은 맑아져 재잘재잘 오손도손 다정하게 산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도덕봉을 지나 금수봉에서 내려오기로 하고^^~
난 공간 지능이 높지 높하여 일반 주거지나 도로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지하상가로 들어가면 헷갈리는데 산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수통골에서 살짝 헤맨적이 적이 있었다.

산의 초입은 오르막이다. 몇 분만 잘 견디면 그 힘으로 가벼운 산행이 된다. 처음에는 내가 헉헉 거리며 잘 따라가지 못했다. 남편은 가다가 서서 기다려 주었다. 기다렸다가 내가 오면 바로 출발, 이 산행 방식,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은 기다리는 동안 휴식이지만 난 휴식없이 또 따라가야만 한다. 그런데 만들어진 높은 계단부터는 남편이 사진 찍느라 따라 오지 못했다. 안개낀 수통골은 환상이었다. 서로 찍어주고 나도 찍기 바빴다. 밧데리가 많이 닳은 걸 보니...

남편은 사진 찍어 친한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며 자랑까지 하느라 느리다. 안개 낀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자니 더 올라가서 좋은데서 먹잖다. 나는 남편이 챙겨준 조금 전에 먹은 간식이 있으니 견딜만하다. 남편은 홍삼 하나만 먹었다. 나는 산에 갈 때는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이상허게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아마도 도시락 준비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이 김밥 사가지고 가자는데,,, 난 또 내 기질대로 습관대로 버릇대로 집에서 준비한다, 그러니 가기 전부터 진이 빠진다.

안개 자욱한 계단 끝까지 올라와 기다려도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숨소리가 거칠다. 뛰어오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빨리 가면서 뒤 돌아 보았고 남편을 큰 소리로 불러보기도 했다. 숨으려고? 남편 말대로 나 잡아 봐라 하려고 나는 처음엔 빠른 걸음으로 가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첫 통화 후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만 뚸지는 않았다. 서너번 전화를 했다. 다 따라왔어야하는데 헉헉 남편 숨소리는 바쁜데 아직도 못 오는 걸 보며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배고프고 춥고 무서웠다. 나는 기다리다 걷다를 반복하였다. 곧 오겠지 했는데,,,

밧데리는 1% 남았고 남편은 보이지 않고,,
남편이 전화가 왔다. 우리의 마지막 전화다. 산책로가 아닌 길로 왔다고 나는 어디냐고 묻는다. 산속에서 공간 지능은 더 떨어졌다. 갑자기 산 속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처음 와 본 길이다. 나는 어딘지 모르겠다고..
남편 화난 목소리다. 기다리지 않고 어디로 갔냐고?

두번 째 전화에서는 장난도 쳤는데,,,
먹을 것이 든 가방은 자기에게 있다고, 난 괜찮다고 아까 잠깐 먹은 홍삼과 주먹밥이 배를 채웠다고..

그런데, 이젠 그 분위기가 아니다. 장난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음산하다. 아직 안개는 산 속에 자욱하고...
나는 정말 어딘지 모르겠다. 점점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 온 몸이 긴장 상태..
살펴보니 빈계산 쪽으로 금수봉 쪽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한참을 가는데 큰 도로가 보인다. 수통골 주차장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해도 잠깐씩 보인다. 한참 아래에 차들이 다니는 길이니 내려가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ㅎ
오는 길에 어느 순간부터 계속 삽재라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수가 없다.

일단 글쓰기 보류, 중도일보 김종진의 심리톡 칼럼 작성중...

중간부터 내려오는 길은 낯설고 무섭고..
하늘은 흐리고 산 속은 안개 자욱~~
비내린 산길의 내리막은 미끄러웠다.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 했다. 남편이 가지고오라 했던 스틱이 고맙다. 남편이 고맙다.
우여곡절 끝에 내려와보니 고속도로 같은 큰 길에 차들이 쌩쌩 달렸다. 갑동이라는 글씨가 보였고 큰길 이정표는 왼쪽으로 공주 오른쪽으로 시청~ 잠깐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지러웠다. 소나무 분재 파는 아저씨께 수통골이 어디냐고 물었다. 잘못 내려왔다고.
스통골은 한참 가야한다며 오른쪽을 가리켰다. 자세히보니 앞에 갑하산이 보였다. 오른쪽 길로 가면 현충원이 갑하산 쪽으로... 이제 알겠다.. 차로는 자주 가던 길, 길에 서서 보니 잠깐 어딘지 했던 것.
배고프고 돈도 없고 밧데리도 부족하고,, 가족방에 문자했는데 셋이 안 읽는다. 밧데리는 산 속부터 1%,, 아쉬우니 남편에게 전화했다. 일단 카톡을 보라고 말할 계획까지 세우고. 전화가 끊어질 수 있으니 현충원에서 만나자고...배고픔이 몰려왔다. 주먹밥 조금 먹었는데 후회가 되었다.
거기서 현충원까지 한참을 걸었다. 한참을... 차로 쌩~ 가면 몇 분도 안 걸릴 거리를...

그리고 2시 넘어서 남편과 상봉~
산에서 먹을 도시락을 집 식탁에서 먹고 둘은 서로에게 말없이 탓을 하고 있었다.
말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말을 서로 안한 것. 남편은 저녁먹고 나갔다. 아까 카톡으로 자랑질하던 친구들이 집 근처로 찾아왔다. 우리집에 올 심상이었을 것이다. 내 촉이 맞을 것이다. 전날 그럴 일이 있었으니... 이건 길어 생략,,,
밥 먹고 나간 남편이 나를 안주 삼아 술마시고 온 밤 10시까지 서로 말이 없었다.

“아주 이상해, 정말 이해할 수없어.” 남편은 이상하다고 했다. 직진했다는데, 갑동 쪽은 직진이 아니라고... 친구들이 그랬다고. 남편은 계속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수통골을 한 두 번 간 것도 아니고 혼자서 그 방향으로 빈계산까지 타고 다녔던 나,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왜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 남편말대로 나 잡아봐라 골탕 먹이려 했고, 나중엔 등산로가 아니라 다시 올라간다고 했을 때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집에 왔으니 다행이다 하고 잊어버렸다. 남편은 내가 기다리지 않고 간 것을 미안해야한다고,,, 기다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며,, 자신은 기다렸다며...

다음날, 수업하고 오다가 집 앞 주차장에서 내렸는데 남편에게 전화왔다.
“어디야?”
“어딘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갑동으로는 가지마.”
“ㅎㅎ 갑동 길도 좋던데^^~ 당신하고 가기 싫은 무의식이 작동했나 봐요.”
“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심한 말을...”

내 말이 맞을 수 있다. 충분히
무의식이...
삼겹살과 만두를 사들고 집에 온 남편이
“이제 갑동으로는 가지마.”
“아니 또 갑동으로 갈거예요. 당신은 안가봐서 모르죠? 진짜 멋진 곳이예요.”
우린 낼 모레 일요일 수통골에 다시 가기로 했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찾으러.
그 친구들이 그랬단다. 이번에 둘이 밧줄로 묶고 가라고..

수통골에 사람이 참 많은데,,,
남편이 간 길도 내가 간 길도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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