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봉사활동가 인터뷰, -대전시자원봉사지원센터 기자단장 홍경석 기자
23년 째 조용히 바쁜 봉사자, 김종진 회장의 남다른 자긍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아야-

23년 째, 자원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대전시낭송인협회 김종진 회장을 만났습니다. 동화작가이자 시인이며, 독서논술 강사로 활동하고 다수의 저서를 낸 김종진 회장입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 했을 때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저 혼자 조용히 하는 것이고 연탄 나르기, 목욕봉사, 청소 하는 일 등의 몸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공연봉사, 녹음봉사, 상담 봉사 등 교육 봉사 위주로 하고 있거든요. 다른 훌륭한 봉사자 분들이 많으니 그런 분들을 취재해 주시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달란트가 다르니 봉사활동의 영역도 다른 점을 충분히 말씀드리고 취재를 했습니다.


Q. 자원봉사의 계기가 있다면?
A. 제가 사회에 무언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심부름 덕분입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선생님께서는 저는 구경도 못한 예쁜 포장지에 선물을 싸서 어느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어요. 누구에게 들키지 말고 살짝 놓고 오라고 당부하셨지요. 다 쓰러져가는 집 부엌에 선생님의 선물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놓고 오면서 제가 천사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때 저는 커서 꼭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자원봉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A. 1998년 무렵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알아봤지만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러던 중 새마을금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읽다가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죠. 그것이 시발점이었어요. 다행이 아이들이 좋아했고 저희 아이들도 함께 읽어줄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지요. 본격적 자원봉사는 2001년부터예요. 다도예절(茶道禮節)과 전통예절을 배운 뒤 어린이 집에서 차 마시는 법을 알려주게 되었어요. 지금은 아이들보다는 어르신들과 만나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Q. 어르신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나요?
A. 서구노인복지센터, 도솔복지센터 등에서 매주 한 시간씩 어르신들을 찾아갑니다. 17년 동안 어르신들께 전통차를 대접하고 시조 낭송을 함께 했어요. 제가 한복을 입고 어르신들을 찾아가기만 해도 좋아하십니다. “자식도 이렇게 못하는데 고마워요, 봉사자들이 천사지.” “우리가 이런 고품격의 대접을 어디 가서 받아.” “무슨 일이 있어도 화요일은 빠지지 않고 시조를 낭송하러 와야 해.” “나는 선생님이 나눠준 시를 냉장고와 안방 벽에 붙이고 외우고 있어.”라는 말씀을 들으면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또한 화요일 오전에 시간 되는 음악가들이 모인 ‘퓨전 앙상블 엘리스’ 음악단에서 사회를 보면서 시 낭송을 한 일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흥겨운 음악을 들으니 기쁘다, 시낭송 눈물이 나.” 하시며 우는 분도 계셨지요. 그 때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어르신들 손을 참 많이 잡아드렸어요. 어르신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저는 무대 마술까지 배웠어요. 신의 한 수였어요. 어르신들 봉사활동의 하이라이트였지요. 전문마술사 같다고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매주 다른 곳에서 같은 마술을 하다 보니 제가 생각해도 잘했어요. 마술 도구는 개인적으로 구매했는데, 요즘말로 장난 아니었어요. 하하.





Q. 다른 봉사 활동도 하셨나요?
A. 매월 셋째 주 금요일에 한 대전시민천문대 ‘별빛 속에 시와 음악회’ 에서는 대전시낭송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낭송을 했고요, 매월 첫 주 수요일 아침 7시에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탄방의 아침 콘서트’를 했어요. 그리고 ‘도솔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는 방학 때마다 ‘청소년 시낭송 아카데미’, 매월 둘째 주 토요일 R-SCHOOL에서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시낭송 수업 봉사를 했죠. 시각지체장애 시설인 ‘한마음의 집’에서는 매월 4주 토요일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도 했어요. 제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일,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목소리와 관계가 있는데요. 한밭도서관 시각실에서 하는 녹음봉사와 대전 생명의 전화 상담입니다. 녹음봉사는 20년 동안 했으니 제가 제작한 녹음도서만 해도 몇 십 권이 됩니다. 시각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도서관에서 녹음 CD를 밀려다 듣는 형식이지요. 생명의 전화 상담 봉사는 자살이나 위급한 상담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면하지 않고 털어놓아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이고요.





Q. 다른 봉사 활동을 더 할 생각은?
A. 하하.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오던 것들을 그만 두지 못했고 하나씩 더 생겼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제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게하고 저는 조금씩 줄여야하지 않을까요? 대신 후원을 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현재, 월드비전 해외사업부, 대전지체장애인협회, 한국사회적자본센터, 선아복지재단, 골든데일리 주간보호센터 등에 자동이체와 물품 등으로 매월 정기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봉사의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기타 자원봉사와 연관된 생각은?
A. 초등학교 4학년 때 저를 조용히 불러서 좋은 일을 하게 해 주신 선생님께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저는 자원봉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하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봉사 점수를 받기 위해 하는 봉사활동과는 다른 것들을 알게 해 줍니다. 저의 4학년 때 담임선생님처럼 못하지만 제가 하는 여러 종류의 활동을 들으며 아이들은 생각하게 되거든요. 남에게 베푸는 일은 결국 자기 성장이고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어른들도 제가 하는 일을 보면서 하고 싶다며 알아보고 같이 하기도 하니까요, 이런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비효과로 전해져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코로나 19로 많은 봉사활동들이 중단되어 있다는 것이죠. 코로나 바이러스가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Q. 앞으로 꿈이 있다면?
A. 제가 부업으로 애터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꾸던 것과는 다른 꿈이 생겼어요. 전에는 좋은 작품 써서 세상에 은은한 울림과 빛을 주겠다는 막연한 꿈이었어요. 죽기 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구나. 좋은 작품을 남겨야겠구나. 시각장애우를 위한 녹음 봉사를 계속하고 생명의 전화 상담도 꾸준히 해야지. 여건이 되는 대로 후원금액과 장소도 늘려갈 것, 등이었는데요, 이제는 더욱 구체적인 목표로 성공한 미래의 저를 봅니다. 2030년 9월 15일까지 여락의 퀘렌시아를 설립하여 상담실과 도서관, 차 마시는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하여 많은 사람들의 힐링 공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2035년 9월 15일에는 여락 장학재단을 만들어 더 많은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금도 그 꿈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봉사인증서 금장 사진, 시장상 사진, 구청장상 사진-
■ 한편 여락 김종진 회장은 대전광역시에서 봉사인증서 금장을 받은 상태이며 VMS, 1365 누적봉사 504회 1013시간 50분을 보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성으로 성공하라], [시에서 행복 찾기], [엄마, 제발], [Old Truck], 공저 [당신의 지문] 이미 발간된 저서 외에도 [마법나라 여섯 친구들], [똥차라고 내가?], [시 치유, 시에서 행복 찾기 2]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중견작가입니다. [대전시낭송인협회] 초대 회장, [여락인성심리연구소] 소장, 대전시 대전이쥬 명예기자로 활동 중이며, 청풍, 학부모뉴스24, 디트뉴스24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 인맥까지 두터운 팔방미인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