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시(1942, 6, 3)
윤동주 - 1917~1945,
북간도(중국지린성 연변 용정)
ㆍ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 일본 도시샤 대학교 문학부 제적
ㆍ1936년 가톨릭소년지 동시 '병아리' 발표
ㆍ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옥사(향년 29세)
ㆍ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외
ㆍ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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