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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득

릴케의 시집 김건홍

2020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건홍

릴케의 전집


그 집의 천장은 낮았다.
천장이 높으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 집에 사는 목수는 키가 작았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 죽은 나무를 마름질했다.

​목수보다 키가 큰 목수의 연인은 붉은 노끈으로 묶인 릴케 전집을
양손에 들고 목수를 찾아갔다.

​책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커다란 관이 돼버렸다고
목수는 자신을 찾아온 연인에게 말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지도 모르겠다고 연인은 답했다.

해가 가장 높게 떴을 때 마을의 무덤들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목수는 연인이 가져온 책 더미를 밟고 올라서 연인과 키스를 했다.
목수의 입에서 고무나무 냄새가 났다.

양력
1992년 경북 상주 출생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심사평
문학적 상투성 답습 않는 시적 압축미 돋보였다

올해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이 높았다. 문학적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은 새로움을 보여주면서 시적 압축미가 돋보이는 작품을 뽑고자 했다. 특히 고전적인 세계를 다룰 때도 그 고전적인 것이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작품을 뽑고자 했다.

당선작을 놓고 끝까지 겨룬 것은 송은유와 김건홍 작품이었다. 송은유의 ‘화분의 위의(威儀)’는 언어를 자기식으로 감각 있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수준급이고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대의 풍경들을 그릴 줄 안다는 점이 매혹적이었다. 반면 부분 부분 문학적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표현들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

심사위원 송재학·손택수·안현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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