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득/시 이야기

좋은 시 콩밥을 먹으며 복효근 시인

콩밥을 먹으며

복효근



밥에 놓아 먹으려 하루 한 나절 불려놓은 검정콩이
그렇게 또록또록 눈을 뜰 줄이야
성급하게 도도록하게 뿌리를 내밀 줄이야

마악 지은 밥에 박힌 검정콩은 뿌리가 한결 더 돋은 것도 같은데
그랬을 것이다 더 뜨겁고 더 깊은 데로 뿌리를 뻗느라
압력솥 속에서도 제 몸을 움직인 흔적

그것들은 내 뱃속에 들어가서도 눈을 더 크게 뜨고
내 안의 더 깊고 뜨거운 데를 찾아
자꾸만 뿌리를 내릴 것인데
나는 콩을, 그 잎을 그 꽃과 꼬투리를 콩포기를 먹은 셈이므로

아무렇게나 숟가락을 붙들고 배가 부르고 그저
하루의 보람이 콩알만큼이나 졸아들 때면
내 안의 수많은 눈들이 새록새록이 눈을 뜨고
수많은 콩포기가 가만가만 나를 흔들어주었으면도 싶다
내 안에도 무슨 뿌리 같은 것이 내려서
깊어지며 뉘우치며 문득문득 뜨거워지고만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