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리더십)10월22일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라🔺️
능력이 숙련된 수준에 도달하면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의 사람들과 그 능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기타를 치는 사람들은 기타에 대해,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는 일에 대해, 골프 치는 사람들은 골프에 대해 이야기에 보라.
그러면 즐겁고, 열정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기술과 식견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나 역시 훌륭한 리더들과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년에 여섯 면 정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가르침을 얻을 기회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 그들이 집필한 저서를 읽고, 그들이 말한 교훈을 공부하고, 그들의 강연을 듣는다.
그래야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장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이 성공했던 분야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배운 것은 반드시 자신의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효과적인 만남의 비결은 경청이다. 경청을 통해 홍륭한 리더의 위대한 점을 직접 배울 수도 있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도 맺을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나의 목적이다.
-360도 리더(360° Leader )
"내가 가진 기술과 관련해서 배울 점이 있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라."
🔺️(사람을 얻는 지혜)🔺️10월22일
🔹️폭넓은 인간관계에서 얻는 교훈🔹️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울 수 있고, 상대방의 습관과 가치관, 지식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면에서 발전하게 된다.
성격이 급하면 느긋한 사람들과 사귀고, 성격이 무르면 강한 사람들과 어울려라.
그러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게 된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능력도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숙한 사람의 이다.
상반되는 것들을 적절하게 조화시킴으로써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고 잘 유지된다. "
★★★<성공학의 철학적 바탕>★★
★★★(2021-10-22)(금)⑥★★★
6. 양자역학과 동서양의 성공학
(1) 상식을 뛰어넘는 양자역학의 세계
■ 동양의 고전이든 서양의 성공학이든 그 바탕은 논리적 인과성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신비주의적이고 선언적 진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과학적 신뢰는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자들이나 저술가들이 성공학의 과학적 논리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양자역학 또는 양자물리학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자역학의 세계도 신비주의적 세계이다. 물리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틀림없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곧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차원을 넘어 철학, 인문학, 신학의 차원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현대물리학은 20세기 시작과 거의 동시에 발견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두 기둥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의 어떤 분야라도 그 내용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려면 이 둘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과 무척 다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익히기가 어렵다. 특히 양자역학은 건전한 상식이라고 하는 것에 완전히 위배되는 현상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므로 일견 황당무계(荒唐無稽)하고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많아 더욱 어렵다.
□ 특히 양자역학의 세계는 마치 마법(魔法)의 세계와도 같다. 양자역학에 관한 자료나 연구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중국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러니 소위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이 원자 이하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발견한 물리학이론으로서, 미시적인 아원자(亞元子)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이다.
□ 양자역학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서양학자들에게 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어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말인가? 예를 들면 빛이 파동이면 파동이고 입자면 입자이지 어떻게 입자도 되고 파동도 된다는 말인가? 어떻게 전자 하나가 관찰하고 있으면 한 구멍으로 통과하는데, 안보면 두 개의 구멍으로 동시에 통과하다는 말인가? 이건 도대체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은 것이다. 도둑놈이 A라는 문으로 들어갔으면 B라는 문으로 안 들어간 것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동시에 A와 B로 들어갔단 말인가?
□ 이러한 양자역학의 내용을 중국학자들에게 설명했더니, 그들은 이를 쉽게 이해해서 양자역학의 태두(泰斗)로 인정받는 닐스 보어(Niels Bohe) 박사는 놀랐다고 한다. 동양에는 이미 그런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음양론(陰陽論)이다. 음과 양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고,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다. 음양론은 서양의 자연과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다.
□ 음양론은 우주의 원초적 상태를 태극(太極)이라 하는데, 즉 태극 속에 함께 있다가 음양이 분리된다고 하는 일원론적(一元論的) 이원론(二元論)으로, 음과 양이라는 두 기운의 움직임에 의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고자 하는 사유체계(思惟體系)이자 자연철학이다. 음과 양은 얼핏 보기에는 대립상태이다. 즉 하늘과 땅, 위와 아래, 밝은 것과 어두운 것, 강한 것과 약한 것, 단단한 것과 무른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등이 모두 양과 음으로 분류되는데, 양은 일반적으로 동적, 외향적, 활동적, 밝음, 높음, 단단함, 거침, 강한 기운 등 발산하고 드러내며 솟아오르는[上昇] 성질을 나타내고, 음은 정적,내향적, 비활동적, 어두움, 낮음, 무름, 부드러움, 약한 기운 등 안으로 거두어들이고[斂] 감추며[藏] 밑으로 가라앉는[沈潛] 성질을 나타낸다.
□ 그러나 서양철학에서의 이원론적 대립개념은 선악(善惡), 미추(美醜), 진위(眞僞) 같이 서로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대립과 배척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음양의 개념은 상호대립적임과 동시에 서로 상보적(相補的)이며 조화(調和)의 개념이다. 즉 음양론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기운의 조화에 의해서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려고 하는 자연철학이다. 그리고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 주의할 점은 음과 양은 어떤 사물이나 성질 또는 현상이 가지는 절대적이거나 고유한 실체(entity)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양상(樣相, mode)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가 있을 때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그러나 군대 같이 남자들만 보여 있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남자가 음이고 강한 남자가 양이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만 모여 있는 여자대학에서는 활동적이고 강한 여자는 양이고 조용하고 약한 여자는 음이 된다. 또 불과 물을 비교할 때 불은 양이고 물은 음이다. 그러나 불과 불을 비교할 때에는 강화(强火. 용광로의 불)는 양이고 약화(弱火. 촛불)는 음이다.
□ 나아가서는 남자는 반드시 양이고 여자는 반드시 음인 것도 아니다. 만일 어떤 가정에 아내가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등 활동적이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형태라면 여자인 아내가 양이 되고 남자인 남편이 음이 된다.
□ 동양의 자연철학에서는 이러한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물이든 조직이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아내가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오는데[陽]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남편이[陰] 가장이랍시고 아내를 휘어잡으려고 하면 그 가정에는 음양의 조화가 깨져 반드시 풍파가 생기는 것이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양과 양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 또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 돈을 많이 버는 쪽이 양이고 적게 버는 쪽이 음이다. 이 경우 금액의 차이가 많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으나 아내가 코끼리만금 버는데 남편이 쥐꼬리만큼 번다면 화합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남편이 자기가 음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양이라고 생각하면 양-양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자석은 같은 극끼리는 반드시 배척한다. 이것이 자연법칙이다.
□ 서양에서 이러한 일원론적 이원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86년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 and Mr Hyde)>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스티븐슨은 <보물섬>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다. 지킬 박사는 낮에는 한없이 점잖고 학식 있고 덕망 있는 신사이지만, 밤에는 폭력, 강간, 살인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마이다. 그러니까 지킬 박사 속에 하이드 씨가 있고, 하이드 씨 속에 지킬 박사가 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몸 속에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이다. 서양의 사유체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이다. 어떻게 천사와 사탄이 한 몸이란 말인가?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스토리를 음미해 보면 음과 양이 태극이라는 한 몸에서 분리되어 나왔고, 양 속에 음이 있고, 또 음속에 양이 있다는 논리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이원론(二元論)에 익숙한 학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인 것이다.
□ 양자역학의 최고 권위자인 닐스 보어 박사는 귀족작위를 받고 가문(家門)의 문장(紋章, Emblem)을 만들 때 주역을 상징하는 태극도(太極圖)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대립적인 것은 상호 보완적이다(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문구 새겨 넣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상보성의 원리이다. 대립적인 것, 즉 음양은 서로 대립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대립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가 아니면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란 말인가? 두 개념은 대립적이나 빛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로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 양자역학의 한 가운데에 상보성의 원리가 있는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도 이 범주에 속한다.
□ 따라서 이 문구는 바로 주역의 음양론이며, 닐스 보어의 ‘상보성의 원리’를 축약한 문구이다. 보어는 노벨상 수상식장에는 주최 측의 승낙을 얻어 주역 팔괘도(八卦圖)가 그려진 옷을 입고 참석했다. 덴마크 정부는 보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500크로네 화폐에 태극도를 배경으로 한 그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다. 이런 연유로 서양에서도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보어는 양자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다.
□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John Dyson, 1923)은 보어가 주장한 넓은 의미의 상보성을 과학과 신학 사이에도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신학과 과학이 인간의 경험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좁다고 주장했다. 신학은 미분방정식을 포함하지 못하며, 과학은 신성함을 포함하지 못한다. 우주를 종교적인 경험을 통해 파악하면 정량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고, 우주를 과학적 경험을 이용하여 파악하면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신학과 과학에 상보성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종교적인 면과 과학적인 면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과 과학의 상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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