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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득

신춘문예 침투 차유오

202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차유오

침투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차유오
△1997년 경기 남양주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재학 중

시 심사평
내면 탐색 능력 뛰어나 앞으로 큰 작품 쓰리라 기대

당선작 ‘침투’는 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자의 내면과 물속이라는 공간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이 시는 빈약한 숨통에 존재의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물속의 상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몸으로 ‘침투’하는 물의 압력과 숨 막힘,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이라도 잡아야 하는 치명적인 막막함을 냉정하게 관찰하는데, 그 시선에서 일상적 자아와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친숙한 물 밖의 세계와 다른 시공간인 물속은 화자를 저항할 수 없는 숨 막힘으로 압박하는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동시에 울어도 들키지 않고 슬픔조차 무화되는 완전한 고독이 있는 매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익사할 것 같은 공포와 숨을 버려서 완전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가 교차하는 심리의 이중성이 시에 독특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물 밖에서 밀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물속으로 가려고 하면서도 벗어나려는 심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은밀하게 엿보게 한다. 물속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는 탁월한 능력은 앞으로 더 큰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심사위원 문정희·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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