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인 문제는 덮고 2차적인 문제를 앞세운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덮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2차적인 문제도 근원적인 문제라....
벌레가 먹는다고 잎의 흔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잎줄기는 남고 혹 잎줄기마저 먹어치워도 원줄기와 뿌리는 남는다. 벌레는 벌레이기 때문이다. 벌레의 힘은 파격적이지 않다. 그래도 벌레는 이파리보다 힘이세다. 이파리가 말 할 수 있으면 그때는 달라질 것이다. 입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보호본능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해명이고 변명이다. 자꾸 빨아먹고 긁어 먹으면 끝까지 당할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알 것, 독하지 못한 나는 벌레먹어가는 연한 명아주 잎인가! 벌레를 잡아야 이파리가 살수있다. 언제쯤 벌레를 잡을 것인가. 말 못하는 이파리는 언제쯤 용기를 낼까? 독하다고 내게 말한 그가 독한 것일까? 이 줄기가 잘 자라 명아주 지팡이로 짚고 다닐 때 쯤이면 시원하게 끝나 있을까? 제 문제를 바로 아는 것, 인정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야기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