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득/시 이야기

기울어짐에 대하여 문숙

기울어짐에 대하여 / 문숙

한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했더니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살아보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노처녀로만 지내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얼마 전 남편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사실도
어느 한때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슬쩍 기울어져 생긴 일이다
체게바라도 김지하도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다
혁명을 하고 시대의 영웅이 됐다
빌게이처도 어릴 때부터 삐딱한 사고로
컴퓨터 신화를 일궈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고
보들레르도 꽃을 삐딱하게 바라봐 악의 꽃으로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다
지구도 23.5도 기울어져 계절을 만들고
피사탑도 10도 넘게 기울어져 세계적인 명물이다
노인들의 등뼈도 조금씩 기울어지며 지갑을 열듯 자신을 비워간다

시도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만
슬쩍 기울어져 볼 일이다​

'이야기가득 > 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련에 기대어 /고영민  (0) 2019.04.03
봄까치 꽃 큰 개불알꽃  (0) 2019.04.02
수선화 이해인  (0) 2019.04.01
민들레 이해인  (0) 2019.04.01
봄에는  (0) 201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