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시집『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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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녀 유명해진 이 시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좋은 생각> 100호 기념 100인 시집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2000)에 수록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후로 KBS TV에 시가 방송되면서 더 널리 퍼졌고 여러 책에 재수록 되기도 했다. 심순덕 시인은 1960년 강원도 평창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다가 31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리움이 사무쳐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가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쉽고 평범한 내용이지만 독자들에게 공감으로 다가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란 동일한 구문의 반복이 일정한 운율을 일으키면서 주술적인 효과를 가져와 고양된 감정과 상승의 분위기를 돋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표현을 활달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작품성 평가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본격시가 아닌 대중시로 취급받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대중문학이 본격문학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입지가 향상되어 그 경계를 나누기도 힘들거니와, 대중성을 획득한 시가 작품성은 떨어질 것이란 도식화된 예단은 온당하지 않다. 이 시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의 양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무튼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공감’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들이 대저 이러하고 어머니 사후에야 그걸 뼈저리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빈방을 열 때마다 길게 드리운 내 불효의 그림자를 보고서 울먹해지곤 한다. 오래전 존경하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어머니와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제가 자랄 때는 시골아이들의 유일한 간식거리가 감이었죠. 하루는 감나무 밑에 먹음직스런 빨간 감이 떨어졌는데 그게 개똥 옆에 있었어요. 개똥이 묻진 않아 버리긴 아깝고 먹자니 꺼림칙해요. 고민하다가 그걸 어머니께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죠.”
“어머니는 ‘왜 이렇게 좋은 감을 나를 주냐’고 물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크게 웃으셨지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자식의 부모 사랑이란 개똥 옆 감을 드리는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라면 자기 먹기 꺼림칙한 걸 자식에게 주겠어요? 감나무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납니다.”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내주려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개똥 옆에 떨어져 먹기 꺼림칙한 감이나 슬쩍 건네는 자식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이토록 다르다. 박 총재도 술회하듯이 어른이 되어서도 개똥 옆의 감을 드린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해 세상 자식들의 사랑과 효는 대개 그렇게 제한적일 것이다.
떠나시고 나니 어머니 서운케 했던 일들만 고스란히 눈앞에서 밟힌다. 두어 번쯤은 “빨리 죽어야지”라고도 하셨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너무 함부로 했던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개똥 옆에 홍시같은 걸 주워 진짜로 드린 일도 있다. 잘 모시지 못한 후회가 시간이 갈수록 깊다.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하지만 과연 깡그리 잊히면 나는 행복해질까.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죽은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고 한다. 사람이 죽어서도 누군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사'라 하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비로소 진짜 죽었다는 뜻에서 '자마니'라고 한단다. 내 어머니도 내가 살아있는 한 ‘사사’로 머물 것이다.
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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