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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락인성심리연구소

참깨를 일면서

”참깨를 1kg 씩 나눠 가지고 가거라.“
아버지께서 깨끗하고 알이 통통한 참깨를 5kg을 사셔서 나눠 주신다. 감사해야하는데,,,
“그럼 깨소금은?”
나도 모르게 철없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평생을 깨소금까지 빻아주셨는데, 이제는 자식들 각자 씻어서, 일어서, 헹궈서, 건져서, 말려서, 볶아서 찧어 먹어야 한다.
넘어져서 시술받고 누워있는 어머니께서 나눠주지 말라고 한소리 하신다.
“애들은 이를 줄 몰라유, 내가 나으면 해 줘야해유.”
나는 아버지께서 엄마의 일을 덜어주시려는 마음을 안다.
“엄마, 애들 나이가 한 두살인가요? 다 잘해요.”
나는 큰 소리 쳤지만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시간이 걸릴텐데, 돌이 안 걸러지면 반찬에 돌이 씹힐텐데, 잘못하면 떠내려가는 게 많을텐데, 볶는 것 한 번도 안해 봤는데 고소하게 되려나....
거실에서 봉지마다 나눈 참깨를 하나씩 집어들고 우리끼리 공간인 주방에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눈다.
”형님, 어떻게 일어요?“
”언니, 깨와 돌이 잘 나눠질까?“
속과 겉이 다르게 윗사람인 나는 차분하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물 붓고, 깨 넣고 씻어 조리로 참깨만 건지다보면 돌이 아래에 남아. 건져진 참깨를 말려서 볶아 먹으면 돼.“

아까워라 떠내려간 참깨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께서 전화하셨다. 괜히 보냈다고, 직접 해서 주는 것이 빠르고 안전하다고. 그리고 이는 방법을 몇 번 더 설명해 주셨다.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버려진 것이 많았다. 이것은 부모님께 비밀이다. 세상의 모든 농부 님들께도 비밀이다.
이순신 장군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라.’ 처럼 쌀 한 톨 보다도 작은 참깨 한 톨을 하수구로 흘려보낸 죄를 알려서는 안된다. 나는 단순하게 참깨를 심을 때부터 가꾸고 베고 털고 불순물을 바람에 날려 자루마다 담아 가져온 그 수고로움,  그 정성을 떠내려버린 내 잘못을 숨기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을 알면 그분들이 속상하실 것 같아서다. 그분들의 마음까지 신경쓰고 싶어서다. 지금 나는 내 죄를 숨기며 투사하고 있다. 제 역할도 못하고 가볍게 흘러간 참깨들에게 미안하다.

이유도 모르고 사라진 세상의 모든 것들의 명복을 빌며-
갑자기? 갑자기.

첫 번 째 일었을 때 나온 돌들
한 손에 조리를 들고 일며 한 손에 휴대폰 들고 촬영하며
물기 빼고 말리는 참깨

수정 안 된 글, 이 글도 언젠가 참깨처럼 떠내려가겠지..
메모: 팔순의 노모가 예순의 자식을 걱정하며

30일 글쓰기 4일 차 -침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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