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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락인성심리연구소

문득

추석이다.
나는 부모님께 간다.
자식들은 우리에게 오고 우리에게 온 자식들과 나의 부모님께 간다. 둘째는 친구들을 데리고 온단다. 나는 상관없다. 가끔 와서 자기도 하고 가끔 통화도 하는 아이들이니. 왔다가 한 명은 밤에 가고 한 명은 자고 간단다. 선물을 가져온단다. 진짜 싫다고 했다. 요즘 미니멀하게 살려고 다 버리는 중이라고. 가져오면 그것도 버릴 수 있다고 협박을 했다. 그랬더니 양주를 가져온다고. 그건 더 싫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마시면 된다고. 같이 마시자고. 같이 마시기 싫으면 문을 닫고 주무셔도 된다고 웃으며 나와같은 협박을 한다.

어제부터 집을 치우는 중이다. 아들 친구들이 오기도 하려니와 명절 전에 습관적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기에. 그제는 화장실, 어제는 김치 냉장고, 냉장고 냉동실을 비우고 오늘은 싱크대 주변 그릇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냉동실 음식들은 내가 죽었다 생각하고 버렸지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께서 주신, 작년에 돌아가신 큰아버지께서 주신,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추억들까지 죽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년 훌쩍 넘는 시간을 변함없이 해 온 일인데, 힘들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서너 시간 서서 했더니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수업은 서너 시간 해도 다리가 아프다는 것을 못 느꼈는데,,,,

매일 정리하며 살면 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면 마음의 숙제가 되고 점점 숙제의 무게가 불어난다. 그래도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청소 잘 하는 아주머니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도 몇 번 부른 적이 있지만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하기로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노각처럼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가을 하늘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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