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하나 둘 떨어진다. 밤도 떨어지고 나뭇잎도 떨어진다. 도솔산에 올라가다가 밤을 주었다. 아니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워하는데 남편이 웃으며 손가락을 가리킨다. 밤이다. 한 개도 못봤는데, 많이 보니 흐뭇하다. 마음 따뜻한 착한 사람 다람쥐가 아무나 먹으라고 모아놓은 밤, 남편과 나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밤 나무 아래서 밤 쪄 먹고 싶다는 말을 그제께도 어제도 오늘도 했는데 가져올 생각조차 못했다. 의식적으로 건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니 집어올 생각조차 못하고 많은 밤을 보고 흐뭇했다고 할까? 사진 찍기에 행복했다고 할까? 하나라도 집어오면 둿 사람이 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한 때 우리나라 위상이 떨어졌던 때가 있었다. 한국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에 외국 여행자들은 기겁을 하고 조심 또 조심했을 것이다. 여행자 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우리 나라 이미지는 외향 내향으로 깨끗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금만 허술하면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이 많았었다. 소매치기 하는 사람이 더 나쁘지만 소매치기 당한 사람도 네가 헛점을 보였으니 그래됐다는 식의 문화였다. 시아버지께서 아주버님 등록금 주려고 소 판 돈을 허리춤에 들고 갔던 이야기가 그 옛날을 대변해 준다. 아마 60,70년 때 쯤에 심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특이한 나라가 됐다. 식당이나 공겅 장소에 스마트 폰을 놓아도 집어가는 이가 거의 없다. 중학교 때 독일 민족성에 대해 배운 기억이 생생하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 놓아두면 주인이 찾아간다는. 그때 우리는 물건을 주으면 주인 찾아주기, 경찰서에 갖다주기 그런 문화였기에 학생인 나는 이해하기가 불편했었다.
며칠 전에 한밭도서관 시각실에 녹음봉사하러 갔다가 나름 많이 비싼 양산을 화장실에 놓고 나왔다. 2시간 녹음 끝나고 집에 가려는 데 양산이 없다. 아차, 화장실.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화장실 안에 정말 없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밖의 선반에 잘 놓여있다. 참으로 감사하다. 자기 것도 아닌데 가져갈리가 없다. 잠깐 의심한 내 마음을 혼냈다.
몇 달 전에 집 근처 대학교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가자마자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에고, 휴대폰 주인 정신이 발칵 뒤집혔겠구나, 그냥 두면 찾아가겠지, 두고갈까 하다가, 혹시 탐을 내서 가져가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안전한 학생처에 갖다 주었다. 아들이 수학여행 갔다오다가 휴게소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놓고 온 적이 있었고, 휴대폰에 개인의 모든 정보와 자료들이 다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까지 잃어버리는 느낌이기에... 나는 오래 전에 시장갔다가 어디에 흘렸는지 못 찾은 적이 있었는데 새로 만들고도 한참을 허전했고 공허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동남아나 유럽 어느 나라 갈 때는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나라는 휴대폰을 놓아도 누구 하나 가져 가지 않아서 외국 사람들이 신기한 나라라고 놀란다고 한다. 물론 cc tv 등의 영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겠고 그 만큼 양심적이어서겠고, 이제 당연한 문화가 되어서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떨어지지만 한국의 위상은 높이 올라간다. 더욱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돼 간다는 자부심 가득한 아침이다.
그 밤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라고 둔 것이니 사람이든 다람쥐든 고라니든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상관하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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