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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득/시 이야기

여름이 오면/이해인 여름이 오면 /이해인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이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한 그루 나무가 되자고 했지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파도 소리가 마음을 흔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탁 트인 희망과 용서로 매일을 출렁이는 작은 바다가 되자고 했지​ 더보기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이기철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 이기철 나무의 생각이 그늘을 만든다 그늘을 넓히고 좁히는 것은 나무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나무는 나무가 뻗고 싶은 곳으로 가서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일하다가 쉬는 나무의 자리다 길을 아는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으로만 가서 제 지닌 만큼의 자유를 심으면서 나무는 가지와 잎의 생각을 따라 그늘을 만든다 수피 속으로 난 길은 숨은 길이어서 나무는 나무 혼자만 걸어 다니는 길을 안다 가지가 펴놓은 수평 아래 아이들이 와서 놀면 나무는 잎을 내려 보내 아이들과 함께 논다 가로와 세로로 짜 늘인 넓은 그늘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더보기
사랑만이 희망이다 / 드보라 사랑만이 희망이다 / 드보라 힘겨운 세상일수록 사랑만이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새들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울수록 더욱 세차게 날개 짓하며 비상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꽃들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세상을 향해 고개 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무들은 그 생명을 마쳤어도 하늘을 향해 곧게 제 모습을 지키며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린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죽어서도 의연히 서 있는 나무들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꽃들처럼 먹구름이 내려앉을수록 더 높이 비상하는 새들처럼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더보기
7월의 시 7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하찮은 풀 한 포기에도 뿌리가 있고 이름 모를 들꽃에도 꽃대와 꽃술이 있지요 아무리 작은 존재라 해도 갖출 것을 다 갖춰야 비로소 생명인 걸요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에 흔들리며 흔들리며 소박하게 겸허하게 살아가는 저 여린 풀과 들꽃을 보노라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견딜 것을 다 견뎌야 비로소 삶인 걸요 대의만이 명분인가요 장엄해야 위대한가요 힘만 세다고 이길 수 있나요 저마다의 하늘을 열고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 그 어떤 삶도 나름의 철학이 있는 걸요 어울려 세상을 이루는 그대들이여! 저 풀처럼 들꽃처럼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무엇하나 넉넉하지 않아도 이 하루 살아 있음이 행복하고 더불어 자연의 한 조각임이 축복입니다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 더보기
말/시바타도요 말 /시바타 도요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더보기
빨래를 널며 빨래를 널며 / 김현희 지난 여름에 입었던 옷들을 꺼내 빨아 헹궈서 유월 바람에 내다 넌다 뜨거운 태양이 절정을 달리기 전 적당한 열기로 지난 삶을 말린다 얼룩진 자국, 찌든 삶의 찌기가 물살 같은 유월 바람에 날려간다 눅눅한 고뇌와 빈 가슴에 이는 허허로운 지난 시간이 다려진다 유월 햇살에 빨래를 널듯 지난 시간들을 널어 말린다 바지랑대 세운 빨래 줄에 펄럭이도록 널어 바짝 말린다 새하얗게 두드린 광목 호청처럼 허술한 마음 널어 저 태양에 다려 반듯하게 개킨다 안개가 스며도 눅눅하지 않는 들꽃향기 섞인 달빛이 배어들고 빨래에서 숲 냄새에 하늘 냄새가 짙다​ 더보기
새도 듣고 바람도 듣고 새도 듣고 바람도 듣고 / 최서림 천산남로 어떤 종족은 아직도, 땅이나 집을 사고팔 때 문서를 주고받지 않는다. 도장 찍고 카피하고 공증을 받은 문서보다 사람들 사이 약속을 더 믿는다. 돌궐족이 내뱉는 말은 하늘도 듣고 땅도 듣고 새도 듣는다. 낙타풀도 지나가는 바람도 다 듣고 있다. 글자는 종이 위에 적히지만 말은 영혼 속에 깊숙이 새겨진다. 바위에다 매달아 수장시켜버릴 수도 불에다 태워 죽일 수도 없는 말.​ 더보기
산/김용택 산 / 김용택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은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자리에서 사는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더보기
6월의 시 6월에 쓰는 편지/ 허후남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곳에 계시는지요​​ 더보기
내 그대를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괴테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단 한번 그대 얼굴 보기만 해도, 단 한번 그대 눈동자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은 온갖 괴로움 벗어날 뿐, 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하느님이 알 뿐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 더보기
삶 / 사라 데센 오는 손 부끄럽게 하지 말고, 가는 발길 욕되게 하지 말라. 모른다고 해서 기죽지 말고, 안다고 해서 거만떨지 말라. 자랑거리 없다 하여 주눅들지 말고, 자랑거리 있다 하여 가벼이 들추지 말라. 좋다고 해서 금방 달려들지 말고, 싫다고 해서 금방 달아나지 말라. 멀리 있다 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가까이 있다 해서 소홀하지 말라. 악을 보거든 뱀을 본듯 피하고, 선을 보거든 꽃을 본듯 반겨라. 부자는 빈자를 얕잡아보지 말고, 빈자는 부자를 아니꼽게 생각지 말라. 은혜를 베풀거든 보답을 바라지 말고, 은혜를 받았거든 작게라도 보답을 하라. 타인의 것을 받을 때 앞에 서지 말고, 내 것을 줄 때 뒤에 서지 말라. 타인의 허물은 덮어서 다독거리고, 내 허물은 들춰서 다듬고 고쳐라. 사소한 일로.. 더보기
다시 태어나도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 차옥혜 7월 말까지 원고료도 없는 시 두 편을 청탁받고 잘 써지지 않아 끙끙 앓다가 8월 5일까지 겨우 연기를 하고 마침내 마감일 여전히 졸작을 만지고 있다. 못한다고 거절했으면 될 것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모처럼 발표할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밤잠을 설치며 캄캄한 곳에서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바짝 긴장하며 시와 씨름한다. 비경제적이고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시인이고 싶다. 풀잎과 풀벌레의 노래 구름과 별과 바위들의 눈빛 받아 적고 세상이 버린 것에서 아름답고 귀한 것 찾아내고 작고 가녀린 것들의 눈물에 젖어들고 존재하는 것들의 평화에 입 맞추고 외롭고 쓸쓸해도 인간의 자존심 깃발처럼 펄럭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사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더보기
집에 못가다/정희성 집에 못 가다/정희성 어린 시절 나는 머리가 펄펄 끓어도 애들이 나 없이 저희끼리만 공부할까봐 결석을 못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 여자가 어머 저는 애들이 저만 빼놓고 재미있게 놀까봐 결석을 못했는데요 하고 깔깔댄다 늙어 별 볼일 없는 나는 요즘 그 집에 가서 자주 술을 마시는데 나 없는 사이에 친구들이 내 욕할까봐 일찍 집에도 못 간다 ​ 더보기
6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6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6월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 뿐이라 할까​ 더보기
권정생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 권정생 백두산 산바람 마시고 사는 얘들아 대동강 강물에 멱감는 얘들아 이곳 산바람을 아니? 낙동강 물 빛깔을 알고 있니? 니네들도 모두 모두 보고 있겠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보름달 두둥실 보고 있겠지 얘들아,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백두산, 금강산, 태백산, 한라산 우리들의 산에 나무가 자라듯 푸르게 나무들이 자라듯이 우리는 한 빛깔 높지도 낮지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이들 어른들은 담을 쌓고 등을 돌리고 어른들은 높은 자리가 좋다고 하지만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어른들은 빛깔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손자들 백두산 산바람 밑에도 귀순이란 애가 살고 있겠지 깜돌이란 애가 살고 있겠지 태백산 산바람 밑에도 혜순이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