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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득/시 이야기

종이컵 /김미옥 종이컵 / 김미옥 그대 마른 입술 한번 적시고 끝나는 생이지만 미련 같은 건 키우지 않습니다 살가운 입맞춤의 순간이 곧 생의 절정 장식장 높이 앉아 지레 늙어가는 금박 무늬 잔도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친근함이 나의 매력 날로 늘어가는 사랑 어쩌지 못합니다 다만 짧지만 뜨거운 만남 따스하게 간직하고 갈 수 있도록 부디 뒷모습 추하지 않게 보내주시길​​ 더보기
삶 / 이동진 삶 / 이동진 우리는 이렇게 기쁘게 살아야 한다. 눈빛이 마주치면 푸른 별빛이 되고 손을 맞잡으면 따뜻한 손난로가 되고 두 팔을 힘주어 껴안으면 뜨겁게 감동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 살아야 한다. 얼마나 길게 살 것이라고 잠시나마 눈을 흘기며 살 수 있나. 얼마나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아픈 것을 건드리며 살거나.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한다. 나 때문에 당신이 당신 때문에 내가 사랑을 회복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더보기
마음/곽재구 마음 /곽재구 아침 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 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진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더보기
좋은 것/김남조 좋은 것/김남조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비통한 이별이나 빼앗긴 보배스러움 사별한 참사람도 그 존재한 사실 소멸할 수 없다 반은 으스름 반은 햇살 고른 이상한 조명 안에 옛 가족 옛 친구 모두 함께 모였으니 죽은 이와 산 이를 따로이 가르지도 않고 하느님의 책 속 하느님의 필적으로 쓰인 가지런히 정겨운 명단 그대로 따스한 잠자리, 고즈넉한 탁상 등 읽다가 접어 둔 책과 옛 시절의 달밤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 까지 좋은 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 세상에 솟아난 모든 진심인 건 혼령이 깃들기에 그러하다​ 더보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작사: 방의경 / 작곡: 김광희 / 노래: 양희은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 부드러운 네 모습은 지금은 어디에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미워하며 돌아선 너를 기다리며 쌓다가 부수고 또 쌓은 너의 성 부서지는 파도가 삼켜버린 그 한마디 정말 정말 너를 사랑했었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더보기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이기철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 이기철 달걀이 아직 따뜻할 동안만이라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는 세상엔 때로 살구꽃 같은 만남도 있고 단풍잎 같은 이별도 있다 지붕이 기다린 만큼 너는 기다려 보았느냐 사람 하나 죽으면 하늘에 별 하나 더 뜬다고 믿는 사람들의 동네에 나는 새로 사온 호미로 박꽃 한 포기 심겠다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내 아는 사람이여 햇볕이 데워놓은 이 세상에 하루만이라도 더 아름답게 머물다 가라​ 더보기
말들의 후광/김선태 말들의 후광 / 김선태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인가. 오랜만에 뿌옇게 흐려진 거실 유리창 청소를 하다 문득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이 거느린 후광을 생각한다. 유리창을 닦으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고, 너의 얼룩을 닦아주면 내가 빛나고, 마음을 닦으면 세상 이치가 환해지듯이 책받침도 문지르면 머리칼을 일으켜 세우고, 녹슨 쇠붙이도 문지르면 빛이 나며, 아무리 오랜 기억도 문지르면 생생하게 되살아나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얼굴빛이 밝아지고, 아픈 마음을 쓰다듬으면 환하게 상처가 아물며, 돌멩이라도 쓰다듬으면 마음 열어 반짝반짝 대화를 걸어오듯이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 속에는 탁하고, 추하고,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걸어 나오는 환한 누군가가 있다. 쓸수.. 더보기
비극적인 삶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비극적인 삶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영혼이 죽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 슈바이처-​여락 김종진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은 하늘에서 숲에 물을 뿌리는 것, 내 마음에 물을 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뿌리면 영혼이 물 먹을 것이고 너무 조금 뿌리면 영혼이 갈증날 것이다. 네가 크기 적한한 만큼 물을 주어라. 영혼을 잘 살게 하는 힘은 너에게 있다^^. 바로 너. 더보기
고독 고독(solitude)/엘라 휠러 윌콕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즐거움은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더보기
비누 / 강초선 비누/강초선 그는 물에 닿으면 반드시 녹는다 그러나 젖은 제 몸의 향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까닭에 한 순간의 생이 뜬금없는 거품일지라도 오래 전 세상 눈 뜨기 전부터 키워온 제 몸의 향기를 흐르는 물에 아낌없이 게워낼 줄을 안다. ​여락 김종진의~ 나는 어디에 녹을까? 무엇에 녹을까? 나는 거기에 내 향기를 아낌없이 게울 수 있는 사람인가. 더보기
우물/남정률 우물 / 남정률 물이 깊게 고인 것은 물을 많이 모아서가 아니라 깊숙이 낮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물이 모여들어서가 아니라 근원 깊은 샘 줄기 있어서이다. 흐르는 구름을 잡을 수 있는 것은 흘러서가 아니라 그 자리 고요하기 때문이다. 높은 하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한없이 깊어서가 아니라 더없이 맑아서이다.​여락 김종진의~ 깊이 파여 하늘보기 어려워도, 높이 올라 푸른하늘 바라보며 이끼 낀 한숨을 풀어놓는다. 바닥과 하늘은 서로 통한다. 거꾸로 잘 어울린다. 더보기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 이정하 때로 삶이 힘겹고 지칠 때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둘러보라 편히 쉬고만 있었다면 과연 이만큼 올 수 있었겠는지 힘겹고 지친 삶은 그 힘겹고 지친 것 때문에 더 풍요로울 수 있다 가파른 길에서 한숨 쉬는 사람들이여, 눈앞의 언덕만 보지 말고 그 뒤에 펼쳐질 평원을 생각해 보라 외려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지​여락 김종진의~~~ 나를 돌아본다. 나와 걸어온 길에게 감사하다. 그 길은 기쁨도 고통도 함께해으니 앞으로도 함께 갈 것이니... 더보기
유월의 기도/ 김대식 유월의 기도 야천/김대식 산자들이여 6 25 이름없는 들판에 숲속에 심지어 바다속에 누워있는 영령의님들을 경배하소서 한 생명 초개같이 버린 전사자 고귀한 그 이름 숭고하고 장엄한 겨레의 사표 거룩한 희생 의뜻 영원히 사는 이타의 길이기에 불꽃같은 생명 부모형제 그리움 심정 장미보다 더 붉고 온몸 사른 투혼 용광로보다 더 뜨겁습니다 님들의 끝없고 드높고 깊은 사랑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빛나기에 산자들이여 희생정신 하늘의 별이 된 사랑 깊은 산골 백골진토되여 오늘 하나하나 불러보고 고개숙여 그이름 묵념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내 민족 그대없이 있을 수 없어 사모의 저녁 서산에 걸린 초생달 그대인 양하여 태극무늬 깃발 걷으며 뜨거운 가슴으로 달랩니다 세세년년 영원토록 이 나라 대한민국 보듬고 칼 끝에 선 누란의.. 더보기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안도현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안도현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참고 기다리면서 엉덩이가 짓물러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되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더보기
단추 하나 / 조금엽 단추 하나 / 조금엽 세 번째 단추가 결석을 했습니다. 마음먹고 산 옷이건만 단추가 떨어진 옷은 입을 수가 없습니다. 바느질을 합니다. 제자리를 찾은 작은 단추 하나가 그렇게 소중한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얼마나 좋은 옷감인지, 얼마나 멋진 디자인인가도 중요하지만 제자리를 지키는 작은 단추 하나가 옷을 옷답게 하고 옷의 값어치와 품위를 지켜주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를 나답게 하고 나를 빛나게 하는 내 삶의 작은 단추 하나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더보기